소식 대회 수상

FOBISIA 시 대회 2023: Victoria Park

아시아 영국국제학교 연합(Federation of British International Schools in Asia, FOBISIA)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회원 학교를 대상으로 여러 학술·문화 대회를 엽니다. 시 대회에는 이 지역에서 학업 수준이 높은 영국식 교육과정 학교의 학생들이 참가합니다. 영어로 수준 높은 글을 쓰는 데 익숙하고, 문학 대회도 낯설지 않은 학생들입니다. 이들 사이에서 1등을 하려면 형식을 다루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술로는 얻을 수 없는 것, 곧 쓸 가치가 있는 소재와 그 소재를 진심과 깊은 생각으로 다루는 힘이 필요합니다.

Victoria Park가 고른 소재는 디오니소스 킬릭스(Dionysus Kylix)입니다. 아테네의 도공 엑세키아스가 기원전 530년 무렵 흑화식(黑畫式)으로 그린 술잔으로, 지금은 뮌헨 국립고대미술관(Antikensammlungen)에 있습니다. 잔 안쪽에는 돌고래에 둘러싸여 포도 덩굴 아래로 항해하는 디오니소스가 그려져 있습니다. 신화 한 편을 잔 하나 안에 담아낸 장면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르카이크기 도자기 가운데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세계 곳곳의 미술사 수업과 박물관 도록에서 다룹니다. Victoria는 이 잔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Victoria가 쓴 시는 에크프라시스(ekphrasis)입니다. 시각 예술 작품을 소재로 삼아, 그림이 형태와 선과 색으로 하는 일을 언어로 해 보려는 시입니다. 이 전통은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묘사한 대목에서 시작해,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시인에게 오래되고도 까다로운 과제입니다. 이미 존재하고,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무언가에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감과 흙이 이미 이룬 것에 맞먹는 것을 언어로 찾아내야 합니다. Victoria는 킬릭스를 그저 묘사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디오니소스의 고요함, 멈춰 있는 돌고래, 포도주를 기다리는 빈 잔을 그렸고, 엑세키아스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과연 그 물음에 온전히 답할 수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Victoria에게 1등상을 주었습니다. 저희는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FOBISIA 시 대회 · 2023
1등상
아시아 영국국제학교 연합(FOBISIA)
Victoria Park
「디오니소스 킬릭스(The Dionysus Kylix)」
수상작(한국어 번역)
디오니소스 킬릭스

항해하되 나아가지 않고, 좁은 자리에서 여전히 노를 저으며, 위대한 디오니소스는 킬릭스 안에 갇혀 있다 수천의 시대와 영겁의 세월 동안, 그래도 그 본질은 남아 있다. 그 우아함이. 그는 고개를 높이 들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자기 힘을 자랑스러워하며, 외로운 킬릭스를 가로질러 항해한다. 아,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던가! 물이나 포도주가 마지막으로 부어진 것은 언제였나? 이제는 빈 킬릭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돌고래들은 언제 다시 헤엄칠까, 디오니소스는 언제 다시 노를 저을까? 그리고 위대한 디오니소스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방금 에트루리아 해적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쾌활한 돌고래로 바꾸어 놓고,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엑세키아스의 큰 뜻은 무엇이었을까? 돌고래들은 말없이 물을 기다리고, 디오니소스는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앉아 있다 살구빛 잔이 바뀌기를, 환한 주황빛 바다로 바뀌기를! 그러면 돌고래들이 헤엄치기 시작하리라. 헤엄치고, 헤엄치고, 또 헤엄치리라. 잔치와 포도주의 신이 이번만은 뛰놀지도 소리치지도 않고 갇힌 채로, 말없이 머물러 있다, 침묵과 잔치는 결코 만난 적 없건만, 이번에는 침묵이, 거룩한 잔치가 된다. 침묵이 아름다움을 그린다. 부드러운 곡선이 킬릭스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뻗어 나가는 포도 덩굴의 곡선, 돛의 곡선, 배의 곡선, 돌고래의 곡선, 이것들이 부드럽고 온화한 아름다움을 빚는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작은 킬릭스에서 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려 낼 수 있을까 신의 눈이 불꽃을 일으키는 모습을, 물이 환영 같은 돌고래를 헤엄치게 하는 모습을, 신의 손이 포도 덩굴을 자라게 하는 모습을? 도공과 화가들은 헛되이 애썼다, 표범의 신이 지닌 고요한 아름다움을 좁은 자리에 담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엑세키아스는 해냈다. 디오니소스 킬릭스

원문(영문)
The Dionysus Kylix

Sailing but not moving, rowing still in small place, The great Dionysus in a kylix marooned for thousands of eras and aeons, Yet its essential character endures: its grace; He holds his head up high, Proud of himself, of his power, Sailing through the lonely kylix. Oh, what a long time it had been! When the last time water or wine poured? An empty kylix it is now, and forever it will be, Waiting and waiting to be! When will the dolphins swim again, When will Dionysus row again? And what is the mighty Dionysus doing? Has he just defeated the Etruscan pirates, Having turned them into jovial dolphins, Smiling in victory? What was Exekias’s grand design? The dolphins silent wait for water, While Dionysus, unmoved, sits in peace Would that the apricot cup should change, Change into a bright orange sea of water! Then the dolphins will start swimming; Swimming, swimming, swimming. The god of feast and wine, For once, does not prance and shout But remain enclosed, silent, Although silence and feast are never met, This time silence, the holy feast: Silence paints the beauty. Gentle curves complete the kylix’s beauty, Curves on the stretching grape vines, Curves on the sail, Curves on the boat, Curves on the dolphins, These create a gentle and soft beauty. Can beauty itself emanate from a small kylix? How can one portray the way A god’s eyes make fire ablaze, How water makes illusory dolphins swim, How a god’s hands make grape vines grow? All in vain potters and artists tried, Tried to portray the tranquil beauty of the panther-god in small space, But Exekias succeeded: The Dionysus Kylix

이 시에서 짚어 둘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구조입니다. 제목이 시의 처음과 끝에 다시 나옵니다. 킬릭스가 그 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듯이, 시 전체가 소재의 이름 안에 담깁니다. 의도한 것이든 직관으로 찾아낸 것이든, 꼭 맞는 선택입니다. 둘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관찰의 깊이입니다. Victoria는 킬릭스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잔을 빛에 비춰 이리저리 돌려 보며, 엑세키아스는 무엇을 의도했는지, 돌고래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포도주의 신에게 침묵은 어떤 의미인지를 묻습니다. 시는 이것들을 어떻게 그려 낼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끝나는데, 바로 앞에서 그 일을 해낸 시 자체가 그 답이 됩니다. 에크프라시스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바로 이런 모습이 됩니다. Victoria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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